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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F1 이야기/F1 사람들

죽음과 마주한 레이서, 파괴신 로맹 그로장

by Overtake!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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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in David Jeremie Grosjean

로맹 다비드 제레미 그로장

생년월일 1986년 4월 17일
국적 프랑스
출신지 스위스 제네바 주 제네바
소속팀 ING 르노 F1 (2009)
로터스 F1 (2012 ~ 2015)
하스 F1 (2016 ~ 2020)
출전 경기 181 경기
포디움 10 회 

 

이게 다 그로장 탓이야 (Grosjeans's fault)

 

 

 

[Chapter.01] 첫 번째 기회와 좌절

198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로맹 그로장은 프랑스 국적을 택한 드라이버였다. 어릴 적부터 카트 레이싱에 뛰어든 그는 포뮬러 르노, 리스타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2007년에는 GP2 아시아 시리즈에서 챔피언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ING 르노 F1팀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발탁되며 F1무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2009년 르노 F1 소속으로 데뷔한 로맹 그로장

 

2009년 넬슨 피케 주니어의 이른바 "크래시 게이트" 사건으로 공석이 된 르노 시트에 그로장이 투입되며 갑작스러운 데뷔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즌의 르노 F1의 R29 레이스 카는 퍼포먼스가 매우 부족했다. 이후 이어진 레이스에서 그로장은 포인트를 얻지 못하며 시즌 종료 후, 시트를 잃었다. 그는 다시 하위 카테고리의 드라이버로 돌아가야만 했다.

 


 

[Chapter.02] 재기와 부활

2011 GP2 우승자 로맹 그로장

 

하위 카테고리로 밀려났지만 그로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GP2에서 그로장은 89포인트를 획득(2위 54포인트)하며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우승한다. 그의 기량을 인정한 로터스 F1 (이전 르노 F1)은 2012년 그로장과 풀시즌 계약을 체결하며 그는 다시 한번 F1에 입성하게 된다.

 

2012 로터스 F1에 영입된 로맹 그로장

 

그로장은 풀시트를 확보하고 나선 호주 GP에서 퀄리파잉 3위(1:25.302)를 기록하며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앞에는 맥라렌의 루이스 해밀턴과 젠슨 버튼뿐 이었고 그 뒤로는 메르세데스의 마하엘 슈마호 레브불의 마크 웨버, 세바스티안 베텔이 있었다. 기대를 모은 레이스가 시작되고 2랩만에 파스토르 말도나도와 충돌하며 허무하게 리타이어 하고 만다.

 

이어 나선 말레이시아 GP 퀄리파잉에서도 1:36.658 기록하며 7위의 좋은 성적으로 마친다. 팀 동료 키미 라이코넨이 페널티를 받으며 그로장은 6번 그리드에서 스타트하며 좋은 성적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4랩을 돌던중 미하엘 슈마허와 충돌하면서 스핀 하며 그래블로 빠졌고 리타이어 했다.

 

3라운드 중국 그랑프리에 나선 그로장은 1:35.903으로 Q3에 진출했지만, 랩타임을 기록하지 못하며 10번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된다. 레이스에 돌입한 그로장은 순위를 4단계나 상승시키며 6위를 기록. F1에서 첫 포인트를 획득한다. 4라운드 바레인 그랑프리 그로장은 퀄리파잉에서 1:33.008을 기록하며 7위에 랭크되며 기세를 이어갔다. 이어 펼쳐진 레이스에서 그로장은 신들린 스타트를 보여주면 첫 코너에서 단숨에 4위를 차지했다. 5랩에서는 3위의 웨버를 제쳐내며 3위로 뛰어 오른다. 이대로 피니시 한다면 포디움이 가능한 상황. 7랩에서는 루이스 해밀턴마저 오버테이크! 2위로 뛰어오른다. 이후 팀 동료 라이코넨에게 자리를 내줬고 선두의 세바스티안 베텔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베텔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뒤를 라이코넨과 그로장이 들어오며 P2, P3 로 마감하며 팀 로터스는 우승은 아니지만 그랑프리를 환상적인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로장으로서는 생애 첫 F1 포디움이었다.

 

2012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3위를 차지한 로맹 그로장

 

이후 그로장은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2위,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3위. 두번의 그랑프리에서 또 다시 포디움에 올랐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대형사고를 치고 마는데.. 스파 서킷에서 펼쳐진 12라운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였다.

 

9위 1:48.538의 기록으로 퀄리파잉을 마친 그로장은 마크 웨버의 페널티로 8번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되었고, 그의 앞에는 루이스 해밀턴이 자리하고 있었다. 레이스가 시작되고 좋은 스타트를 보인 그로장이 공격적으로 해밀턴을 트랙 안쪽으로 강하게 푸쉬했고 해밀턴이 미처 피하지 못하며 해밀턴의 앞바퀴와 그로장의 뒷바퀴가 엉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로장의 레이스 카가 위로 튕겨져 나가 전방에 있던 레이스 카들을 덮치며 페르난도 알론소, 세르지오 페레즈가 이 사고에 휘말리게 되었다. 헤일로가 없던 시절이라 자칫하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그로장과 해밀턴의 사고로 첫 코너에서 4명의 드라이버가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2012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크래시하는 레이스 카들

 

레이스가 끝난 후, FIA는 이 사고가 "다중 추돌을 유발한 위험한 사고"였다고 발표하며 이탈리아 그랑프리에 출전금지 할 것을 명령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그로장의 공격적인 레이싱 스타일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세바스티안 베텔과 챔피언십 경쟁을 이어 가고 있던 페르난도 알론소가 탈락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알론소는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하며 챔피언십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그로장은 알론소의 팬들에게 강한 질타를 받게 되었다. "파괴신"이라는 별명의 등장이었다.

 

돌아온 그로장은 비난 여론에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했는지 사고 이전 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96포인트를 획득하며 8위에 랭크. 2012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로장만의 공격적인 레이싱으로 포텐셜을 인정받았지만, 다소 아쉬웠던 시즌이었다. 

 

2013 시즌에도 로터스에서 시트를 확보한 그로장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4번의 그랑프리에서 모두 팀 동료 라이코넨과 함께 더블 포인트 피니시하며 시즌 전망을 밝게 했다. 바레인 GP에서는 2년 연속 포디움 피니시. 또 한국 영암에서 열린 한국 GP에서도 포디움에 오르는 등 4번의 포디움 피니시를 기록하며 132포인트를 획득 7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Chapter.03] 새로운 도전과 한계

 

2016 하스 F1으로 이적한 로맹 그로장(우), 그의 팀 동료 에스테반 구티에레즈

 

2016년, 그로장은 신생팀 하스 F1 팀에 합류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신생팀 하스와 하스 소속 그로장의 첫경기였던 호주 GP에서 그로장은 6위로 피니시하며 신생팀에게 놀라운 결과를 안긴다. 6위라는 결과가 시큰둥(?)하지만 시즌 챔피언을 두고 경쟁하는 레드불, 메르세데스, 페라리에서 2대씩 자리를 차지하게되면 포인트가 있는 10위권 중 남는 자리는 겨우 4개. 4자리를 두고 중, 하위권의 10~14대의 차량이 경쟁하게 되는데 그로장이 6위를 거뒀다는 것은 이들 중 가장 빨랐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팀 라디오에 "이것은 우리에게 우승과 같다. 믿을 수 없다."를 반복했을 정도. 레드불의 다니엘 리카도 또한 하스의 성적을 전해듣고 "인상적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이어진 2라운드 바레인 GP, 퀄리파잉에서는 1:31.759로 9위를 차지. 9번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된다. 레이스에 돌입하자 그로장은 특유의 공격적인 드라이빙으로 5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려 그랑프리를 마무리한다. 센세이션한 신예팀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이 점점 퍼포먼스를 업데이트하면서 하스는 신생팀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고, 결국 29포인트를 획득.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8위를 기록했다. 이 29포인트는 모두 그로장이 따낸 포인트로 그로장은 13위에 랭크되었다.

 

2017시즌 하스는 노포인트를 기록했던 에스테반 구티에레즈를 대신해 케빈 마그누센을 영입하며 시즌에 나섰다. 하지만 2016년부터 이어진 브레이크 문제로 여전히 애를 먹고 있었고, 이로 인해 그로장은 제대로 된 드라이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장은 3라운드 바레인 GP에서 8위로 피니시하며 4포인트를 획득. 5라운드 스페인 GP, 6라운드 모나코 GP, 7라운드 캐나다 GP에서 10위, 8위, 19위를 기록하며 연속 세번의 포인트 피니시를 기록했다. 그리고 9라운드 오스트리아 GP에서 6위로 피니시하며 8포인트를 획득하며 이 시즌 가장 높은 포인트를 획득했다. 이어진 그랑프리에서 그로장은 총 28포인트를 획득.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3위에 랭크되며 선전했다.

 

2018시즌 개막전 팀동료 마그누센과 그로장은 퀄리파잉에서 놀라운 스피드를 보여주며 1:23.187 / 1:23.339 의 기록으로 6, 7위를 기록했으나 다니엘 리카도가 페널티를 받으면서 5, 6위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과 동시에 좋은 스타트를 기록한 하스의 드라이버들. 케빈 마그누센은 막스 베르스타펜을 제쳐내며 4위를 차지했다. 하스에게 순조롭게 흘러가던 경기. 22랩에 피트인한 마그누센이 타이어를 바꾸고 23랩에 들어가던 찰나, 피트인 실수로 휠너트가 빠져버리며 리타이어하게 되었다. 그로장만 남은 상황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25랩 그로장의 레이스 카마저 왼쪽 뒷바퀴의 휠너트가 빠지는 똑같은 실수로 리타이어한다. 높은 포인트를 기대케 했던 레이스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너무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이후 그로장은 8라운드까지 노포인트를 기록하며 슬럼프의 늪에서 헤매고 있었다. 9라운드 오스트리아 GP 1:03.892의 퀄리파잉 기록으로 5번 그리드를 차지한 그로장은 선두권의 발테리 보타스, 다니엘 리카도, 루이스 해밀턴이 리타이어하는 행운 속에 팀동료 마그누센과 함께 4위, 5위를 기록하며 12포인트를 획득한다. 이후 펼쳐진 그랑프리에서 37포인트로 14위를 기록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팀동료 마그누센이 56포인트로 9위에 오른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 하스 팀으로서는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5위를 기록하며 F1에 참가한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2018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후, 기뻐하는 하스 크루들

 

2019시즌 그로장은 단 8포인트만을 따내며 18위를 기록했다. 팬들로부터 그로장을 교체해야한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그로장의 실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퀄리파잉에서 꾸준히 탑 10에 이름을 올리며 준수한 기록을 보여줬지만 유독 레이스에 들어가면 사고에 휘말리거나, 좋지 못한 순위로 피니시했다. 연속된 사고로 위축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로 인해 시즌이 끝나고 하스와 결별할 것이란 예측들이 계속 되었다.

 

[ ** 필자 주 : 메르세데스와 결별한 에스테반 오콘이 하스의 새 드라이버로 올 것이란 예측이 있었고, 그로장 또한 영국 그랑프리가 끝난 후, 브레이크에 자신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듯한 사진들을 SNS에 올리며 드라이버 교체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

 

여러가지 추측에도 불구하고 하스는 그로장을 잔류시키며 하스의 개국공신이며 하스의 차를 가장 잘 이해하는 드라이버라는 발표를 했다. 그렇게 2020시즌에도 그로장은 하스에 잔류하게 되었다.

 


[Chapter.04] 불속에서 깨어나다

70주년을 맞은 F1 2020시즌 로맹 그로장과 하스 팀은 완연한 하락세를 보여주었으며,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 보였다. 11 라운드 뉘르부르크링에서 펼쳐진 에이펠 그랑프리에서 9위로 피니시 하며 2포인트를 획득하며 시즌 첫 포인트를 획득했다. 첫 포인트의 기쁨도 잠시, 12라운드 포르투갈 그랑프리를 앞두고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하스가 재정적인 문제로 팀의 두 드라이버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스의 드라이버들은 동기를 잃어버렸고 이후 노포인트로 힘겨운 시즌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펼쳐진 15라운드 바레인 GP.

 

그로장은 1:30.138의 저조한 성적으로 19위에 랭크되며 최하위권에서 레이스를 시작한다. 레이스가 시작되고 오프닝 랩에 돌입하고 3번 코너로 진입하던 순간, 그로장은 앞차량을 피하려다 다닐 크비얏의 왼쪽 앞바퀴와 충돌하여 미끄러지다가 시속 220Km/h가 넘는 속도로 가드레일로 돌진하여 그대로 부딪히고 만다. 이 과정에서 가드레일이 충격을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휘어지면서, 차를 짓이겨 두동강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서바이벌 셸의 연료가 유출되면서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는 매우 큰 사고를 당했다.

 

바로 레드 플래그가 선언되고 경기는 중단되었고, 이 모습을 본 모든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피트로 돌아온 많은 드라이버들이 그로장의 안부를 물었고 리플레이를 보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모두가 그의 무사귀환을 바랬다. F1 공식 의료진이었던 이안 로버츠는 "매우 나쁜 결과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2020 바레인 그랑프리 가드레일과 충돌한 로맹 그로장의 차량

 

모두가 신에게 의지하며 인간의 나약함을 경험하고 있던 그 사이. 기적이 일어났다. 불길 속에서 그로장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구부러진 가드레일을 레이스 카의 헤일로가 막아주어 가까스로 머리 부상을 피했으나, 구부러진 구조물과 헤일로가 엉켜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불길이 번지는 28초동안 그로장은 맨손으로 구조물을 밀어내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의 절박함에 신이 응답했을까. 마침내 그로장은 빈 공간을 찾아내 자력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그는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불길 속에서 빠져나왔다. 코스 마샬들과 의료진이 즉각적으로 달려와 그를 구조했으며, 그는 그렇게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로맹 그로장

 

사고 이후 그로장은 인터뷰에서 "나는 두번째 생을 얻었다."라고 말하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후 하스팀과는 예정된 결별 수순을 밟으며 F1에서 은퇴하며 F1 무대를 떠났다.


 

로맹 그로장은 논란도 많고 기복이 심한 드라이버였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로장은 매우 빠른 드라이버이기도 했다. 그의 커리어에서 좋은 레이스 카를 가질 기회가 없어 챔피언십 경쟁은 하지 못했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탑 3팀 바로 뒷자리는 그로장의 자리였을 만큼 좋은 기량을 가졌다. 로터스 시절에도 월드 챔피언 키미 라이코넨과 대등한 배틀을 주고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 받는 드라이버였다. 하지만 그는 공격적인 드라이빙으로 사고를 내거나 욕을 하는 등의 감정적인 모습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끝없이 도전하는 정신과, 사고 후에도 동료들의 안전을 먼저 걱정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있었다.

 

해맑은 모습으로 인터뷰하는 로맹 그로장과 아내 매리언 그로장

 

"나는 죽었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F1에서 우승을 하거나 챔피언십을 획득하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F1을 떠나는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 로맹 그로장 넷플릭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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