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i-Matias Räikkönen
키미-마티아스 라이코넨
생년월일 | 1979년 10월 17일 |
국적 | 핀란드 (우시마 에스포) |
소속팀 | 레드불 자우버 (2001) 맥라렌 (2002 ~ 2006) 스쿠데리아 페라리 (2007 ~ 2009) 로터스 F1 (2012 ~ 2013) 스쿠데리아 페라리 (2014 ~ 2018) 알파 로메오 레이싱 (2019 ~ 2021) |
월드 챔피언십 | 1회 (2007) |
그랑프리 우승 | 21회 (21/349, 6.02%) |
그랜드 슬램 | - |
그를 정말 좋아해요.
그만의 방식으로 F1을 사랑하고, 항상 솔직하죠.
그런 면이 정말 좋아요.
겉모습은 차가운 아이스맨같지만,
내면은 아주 좋은 사람으로 가득차 있죠.
그는 F1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고,
자신만의 개성과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리울 겁니다.
- 페르난도 알론소
[Chapter 01.] 불굴의 카트 신동
키미 라이코넨은 8살의 나이에 카트 선수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두 번째로 모나코 레이스에 출전했을 때 벌어진 일화는,
그가 드라이버로서 얼마나 불굴의 투지와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첫 랩에서 충돌로 배리어 너머 잘못된 길로 튕겨 나갔지만, 키미는 길이 끝날 때까지 카트를 멈추지 않고 몰았다. 결국 카트를 들어올려 트랙으로 복귀한 그는 레이스를 계속 이어갔고, 결국 3위로 완주했다. 팀원들은 당연히 그가 리타이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키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Chapter 02.] 자우버 시절: 잠재력을 증명하다. (2001)
키미 라이코넨은 단 네 번의 포뮬러 르노 레이스 출전 경험만으로 F1에 데뷔했다. 이로 인해 F3000에서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F1 슈퍼 라이센스 발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피터 자우버는 키미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FIA에는 강력하게 주장해 간신히 슈퍼 라이센스를 발급받아 과감히 키미에게 F1 시트를 맡겼다. 데뷔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키미는 곧바로 6위를 차지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시즌 내내 꾸준한 성적을 거두며 루키답지 않은 노련함을 보여줬고, 드라이버 랭킹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는 맥라렌의 눈에 띄는 계기가 되었다.
[Chapter 03.] 맥라렌 시절: 불운의 드라이버 (2002 ~ 2006)
론 데니스는 자우버에서 보여준 키미의 드라이빙을 보며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를 미카 하키넨의 후계자로 낙점했다. 같은 핀란드인 드라이버 미카 하키넨이 떠난 빈자리를 키미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키미는 맥라렌과 함께한 첫 대회인 2002 호주 그랑프리에서 3위로 포디엄에 오르며 론 데니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2002시즌 맥라렌이 공급받은 메르세데스의 엔진이 결함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미는 4번의 포디움 피니시와 함께 24포인트를 획득 6위로 마무리했다.
2003 시즌, 키미 라이쾨넨은 1회의 우승과 10번의 포디움 피니시로 눈부신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다. 시즌의 첫 번째 그랑프리인 호주에서 시작된 레이스에서, 키미는 시스템 결함으로 피트레인 과속으로 페널티를 받았고, 결국 3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페널티를 받기 전, 키미는 1위에 올라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후 2라운드인 말레이시아에서 키미는 첫 우승을 차지했다. 퀄리파잉에서 1:37.858로 7번째 순위를 기록했던 키미는, 미하엘 슈마허, 페르난도 알론소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3라운드인 브라질에서는 레이스가 55랩에서 중단되었고, 그 결과 53랩에서 선두에 있던 키미가 우승자로 발표되었다. 레이스가 중단되었을 때, 2랩 전의 순위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된다는 룰에 따른 것이었다. 일주일 후 새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피지켈라가 56랩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순위가 변경되었다. 결국 피지켈라가 우승을 차지하고, 키미는 2위로 그랑프리를 마쳤다.
시즌 내내 불운이 따랐지만, 키미는 91포인트로 시즌을 마감하며, 미하엘 슈마허(93포인트)에게 단 2포인트 차로 아쉽게 2위에 올랐다.
2004 시즌에는 이전부터 탈이 많았던 메르세데스 엔진이 본격적으로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거듭된 고장으로 7개의 그랑프리에서 단 2번의 완주를 기록했고, 키미는 이 때문에 1라운드부터 7라운드까지 단 1포인트를 기록했다. 리그 선두 슈마허는 이 시점에서 60포인트였다. 이후 레이스에서 3번더 리타이어 했지만 1번의 우승과 3번의 포디움 피니시를 기록 45포인트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7위로 마감했다.
2005 시즌엔 키미가 다시 한번 힘을 냈다. 신형 MP4-20 레이스 카와 함께 7번의 우승과 5번의 포디움 피니시를 하며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줬고 페르난도 알론소와 치열한 타이틀 결쟁을 벌였다. 그치만 반복적인 기계 결함으로 4번의 뼈아픈 리타이어를 해야만 했고 결국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우승을 내주고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F1 팬들에게 차량만 뒷받침되어 준다면 키미가 단연 챔피언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2006 시즌은 '황제' 미하엘 슈마허의 은퇴 시즌이었다. 시즌 내내 슈마허의 후계자로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키미 라이코넨이었다. 하지만 '아이스맨' 키미와 열정의 상징인 페라리는 서로 다른 이미지로 맞지 않는 듯 보였고, 양 측 모두 이적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라운드 이탈리아 그랑프리 이후, 페라리는 키미와 3년, 연간 5100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계약을 발표하며 미하엘 슈마허의 뒤를 이어 그를 영입했다.
[Chapter 04.] 페라리 시절: 빛났던 영광의 시대, 사그라든 열정 (2007 ~ 2009)
2007 시즌은 페라리와 맥라렌의 싸움이었다. 1라운드 호주에서 페라리와 함께 첫 그랑프리에 나선 키미는 폴포지션, 패스티스트 랩, 레이스 우승을 차지하며 데뷔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더불어 1989년 나이젤 만셀 이후로 페라리 데뷔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두번째 드라이버가 되었고 멋진 출발을 보이며 F1 팬들에게 미하엘 슈마허의 시트를 이어 받은 키미 라이코넨이 페라리와 승승장구하며 당연한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줬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2007 시즌도 키미에게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맥라렌으로 이적한 페르난도 알론소와 그의 팀메이트인 루이스 해밀턴은 데뷔 이후 꾸준히 포디움에 오르며 키미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쌓았다. 특히 해밀턴은 '차기 슈마허'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키미는 늘 그랬듯 묵묵하게 자신만의 레이스를 이어갔다.
맥라렌에 큰 사건이 생겼다. 팀 메이트였던 알론소와 해밀턴이 알력 다툼이 있었고 맥라렌이 페라리에 스파이를 심어 페라리 차량의 기술과 정보를 빼돌린 일명 '스파이 게이트' 사건으로 컨스트럭터 포인트를 몰수당하는 등 자멸했다. 그 사이 페라리는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으며 맥라렌을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마지막 17라운드 그랑프리를 앞둔 드라이버 챔피언십의 상황은 키미에게 녹록치 않았다. 1위 해밀턴이 107포인트, 2위 알론소가 103포인트, 3위에 올라있던 키미가 100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1위에게 10포인트가 주어졌기 때문에 키미가 우승하려면 그가 1위를 차지하고 나머지 2명의 경쟁자가 낮은 순위를 기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주제 카를루스 파시 서킷에서 열린 퀄리파잉에서 팀동료 펠리페 마싸가 1:11.931을 기록하며 폴포지션을 차지한다. 그 뒤는 1:12.082를 기록한 루이스 해밀턴, 3위는 1:12.322를 기록한 키미 라이코넨이었다. 그리고 4위에는 우승 경쟁자 페르난도 알론소가 버티고 있었다.
오프닝 랩에서 마싸가 루이스 해밀턴의 앞을 막은 사이 키미가 2위로 올라서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페라리의 팀워크가 빛나는 완벽한 출발이었다. 심지어는 루이스 해밀턴이 출발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페이스를 올렸고 코너에서 휠락이 걸리며 코스를 벗어나 7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오프닝 랩부터 키미와 페라리에게는 완벽한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7위까지 떨어진 순위를 만회하기 위해 무섭게 페이스를 올리던 해밀턴이 7바퀴를 돈 시점 무슨 일인지 서행하기 시작했다. 엔진에 문제가 생겨 속도가 올라가지 않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순위가 18위까지 떨어졌고 데뷔 시즌 챔피언십에는 멀어지게 되는 듯 보였다. 이제 키미는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팀 메이트 마싸와 페르난도 알론소만을 누르면 되는 상황이었다.
키미는 마싸보다 늦게 피트 스탑을 하는 오버컷 전략으로 마싸를 오버테이크! 1위로 올라섰다. 알론소는 페라리 듀오에 밀려 3위에 올라서있는 상황. 거칠 것이 없어진 키미는 레이스 카를 더욱 몰아붙여 66랩에서 1:12.445의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 그대로 골인하며 우승을 가져간다.
그리고 챔피언십 순위는 100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던 키미가 1위로 +10포인트를 더해 최종 110포인트. 2위에 위치해있던 해밀턴은 7위를 기록해 기존 107포인트에 +2포인트를 더한 109포인트. 그리고 페르난도 알론소는 3위를 기록하며 기존 103포인트에 +6포인트를 더해 109포인트를 기록했다. 1포인트 차이로 맥라렌 듀오를 앞선 키미가 첫 월드 챔피언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2008 시즌 첫경기였던 호주 그랑프리는 온갖 리타이어가 난무하며 악몽같았는데 누가 더 빠르게 들어오냐가 아니라 누가 더 트랙에 오래 살아남냐의 게임이었다. 단 6명의 드라이버 만이 골인에 성공했기 때문에 7위부터 8위까지는 더 많이 달린 드라이버에게 포인트가 주어졌다. 키미는 53랩까지 살아남아 1포인트를 획득했다... 5라운드 터키 그랑프리까지 포디움 피니시를 이어가며 선두 경쟁을 이어갔으나 이후로는 성적의 기복이 심했고 팀 메이트 펠리페 마싸가 루이스 해밀턴과 선두 경쟁을 할 수 있게 서포트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9 시즌에는 브런 GP (현. 메르세데스)의 차량이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고 페라리의 F60 레이스 카는 경쟁력이 없었다. 더불어 키미는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틈틈히 랠리에 나가는 등 챔피언에 오른 후 F1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모습들이 나타났다.
페라리와 마지막 시즌 키미는 48포인트로 6위를 기록한 채 WRC의 시트로엥 주니어팀으로 이적하며 잠시 F1을 떠났다.
[Chapter 05.] 로터스 F1 시절: Leave me alone! (2012 ~ 2013)
2년간 F1을 떠났던 키미는 2012년 로터스 F1과 계약하며 복귀를 알렸다. 많은 이들이 그의 경쟁력에 의문을 가졌지만, 키미는 첫 해부터 단 한번의 리타이어 없이 207포인트를 기록. 로터스 소속으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3위에 오르며 논란을 잠재웠다. 또한 18라운드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과 함께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팀에서 라디오를 통해 알론소가 뒤따라온다고 하자 "나 좀 냅둬, 내가 뭘해야하는지 알고 있어.(Leave me alone, I know what to do)"라고 말하며 '아이스맨'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키미는 이 말이 화제가 되자 Leave me alone 티셔츠를 만들어 팀원들에게 나눠주며 첫번째 우승을 자축했고 이 일화로 광고까지 찍었다.. 큰 그림 ㄷㄷㄷ
키미 라이코넨 광고 : https://youtu.be/ghykrSCC03A?si=ZjEOEvHbbpwX8Ycw
[Chapter 06.] 두번째 페라리 시절: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견뎌낸 시간 (2014 ~ 2018)
2014 시즌에는 페르난도 알론소와 팀 메이트를 이루며 페라리로 복귀한다. 하지만 페라리의 레이스 카가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알론소와 키미 모두 챔피언십 경쟁을 하지는 못했다. 영국 그랑프리에서 엄청난 크래시를 내고 절뚝거리며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지만 별 일 없이 2014시즌을 마무리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성적은 55포인트로 12위.
2015 시즌을 앞두고 알론소의 대체자로 세바스티안 베텔이 새로운 팀 메이트로 영입되었다.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베텔이었기 때문에 키미는 조용히 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 시기 메르세데스가 루이스 해밀턴과 니코 로즈버그라는 라인업으로 경쟁력이 워낙 대단했기때문에 페라리는 2인자에 머물렀다.
2017년과 2018년, 키미 라이코넨은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각각 4위와 3위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그의 기량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져, 계약 연장이 당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8년 9월 11일, 페라리는 샤를 르클레르를 영입한다고 발표하며 키미의 시트는 사라졌다. 오랜 동행을 마치며 페라리와의 관계가 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10월 21일, 미국 그랑프리에서 그는 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 우승은 2013년 호주 그랑프리 이후 113그랑프리 만에 거둔 승리였으며, F1 역사상 가장 긴 우승 간격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온 시간에 대한 값진 보상이었다.
[Chapter 07.] 알파 로메오 시절: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 조용한 퇴장 (2019 ~ 2021)
2019 키미는 알파 로메오로 이적했다. 알파 로메오가 키미가 커리어를 시작했던 자우버의 후신이었기에 사실상 키미의 친정팀이었다. 알파 로메오가 메르세데스, 레드불, 페라리와 같은 탑티어의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승을 경쟁할 순 없었지만 키미는 늘 그래왔듯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트랙 위에 존재감을 새겼다. 그렇게 43포인트를 기록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12위를 기록했다.
2020년, 전 세계는 예상치 못한 재앙을 맞이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모든 것이 멈춰섰다. F1 역시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창설 70주년을 맞은 시즌은 결국 19라운드로 축소된 채 개막했다. 그러나 알파 로메오의 상황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엔진 성능 저하로 인해 종합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함의 아이콘이었던 키미 라이쾨넨은 또 하나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운다. 10라운드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루벤스 바리첼로의 F1 최다 출전 기록(322회)과 타이를 이룬 것이다. 꾸준함으로 쌓아 올린 값진 기록이었다. 2020 시즌 키미는 총 4포인트를 획득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16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1년, 키미 라이코넨은 긴 여정의 끝에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아부다비의 마지막 밤, 그는 언제나처럼 과장 없이, 묵묵히 레이스를 마쳤다. 349번. 그가 그리드에 선 횟수다. 열광도, 드라마도 바라지 않고, 그저 레이스를 사랑했던 사내가 남긴 숫자였다. "기분이 좋아요. 잘 견뎌내서 다행이에요. 이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떠나는 순간조차, 키미는 담담했다. 환호 대신 고요를, 눈물 대신 미소를 택했다. 일상처럼 돌아오던 피트로 또 다시 어김없이 돌아온 아이스맨은 조용히 헬멧을 벗었다. 그렇게 때로는 고요했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유머러스했던 우리의 한 시대가, 아무런 소란 없이 막을 내렸다.